정의의 여신 디케는 한국에 와서 어떻게 변했나
이재명 '사범 리스크"라는 표현에 반대한다
그에게 위험한게 국민.국가엔 암전할 수도
요즘 정의의 여신은 메가톤급 눈치 보기
안대 풀어 헤치고 고장남 저울에 무딘 칼
그러나 아무리 꿈떠도 기댈 곳은 오직 디케
온갖 지연 작전 막아내고 정의의 칼 휘두르길
개인적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라는 말에 반대한다. ‘리스크(위험)’란 철저하게 이재명 전 대표와 민주당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가 위험한 것이 국민과 국가에 오히려 ‘세이프(안전)’하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누구의 관점에서 그렇냐고? 두 눈을 가리고, 손에는 저울과 칼을 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의 관점이다.
디케는 제우스와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 중 한 명으로, 인간 세상에서 정의가 훼손될 때 복수와 재앙을 내리는 신이다. 디케의 어머니인 테미스는 법과 계율의 여신으로 옳고 그름을 관장한다. 천하의 바람둥이에 약점 많은 제우스도 의로운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사악한 인간에게는 벌을 주었다. 옳고 그름이란, 태초부터 인간사에 그렇게 중요했다. 디케는 로마시대에 ‘유스티티아(justitia)’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정의’를 뜻하는 ‘저스티스(justice)’ 라는 말이 거기서 유래했다.
범죄 혐의 11개로 재판 4개를 기다리는 전 당대표와 그를 지키기 위한 로펌으로 전락한 제1당의 기상천외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정의의 여신이 있기는 한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봤다. 아마도 안대를 풀어헤치고, 고장 난 저울에 무딘 칼을 들고 있는, 굼뜨고 한가한 여인의 모습이 아닐까.
우선 죄의 무게를 다는 저울부터 보자. 정치인의 거짓말이나 위증교사는 일반인의 그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그 해악이 갖는 공적 파장 때문이다. 죄를 제대로 저울 위에 올리기는커녕 있던 죄조차 깃털처럼 가볍게 둔갑시켜준 게 권순일 사법부였다.
2020년 당시 권순일 대법관은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무죄 의견이 5대5로 갈린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내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는 “상대 후보자의 의혹 제기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고, 단순히 부인하는 답변일 뿐”이라며 “공직 선거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을 사후에 사법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 이 전 대표는 지사직을 유지했고, 그 이후 벌어진 일은 아시는 바와 같다. 그때 저울이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이재명 의원도, 당대표도, 비명횡사도, 민주당의 아버지 등극도 모두 없었을 것이다.
그다음은 칼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칼은 종종 시간과 동의어다. 질적인 시간의 신 카이로스도, 양적인 시간의 신 크로노스도 모두 칼과 낫을 들고 있다. 그만큼 시간에는 거부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내재되어 있다. 마감 시간이 ‘데드라인’이라는 번역은 과장이 아니다.
아무튼 이재명 전 대표와 사법부의 관계는 처음부터 시간을 건 싸움이었다. 공직선거법은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될 경우 의원직 상실은 물론 5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된다. 그러니 이재명의 민주당은 최대한 시간이 더디게 가도록 사법부의 시계추를 붙들고, 검사 탄핵부터 대법원 이전 법안 발의까지, 온갖 압박 수단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시간을 붙들어 매기 위해 저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데 정의의 여신은 여유롭고 한가하기가 짝이 없다. 지난주 기소 1년 9개월 만에 드디어 이재명 전 대표의 선거법 1심 재판부가 오는 9월로 변론을 종결하고. 10월이면 최종 선고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모처럼의 소식이지만 기소에서 1심 선고까지 25개월 걸리는 셈이다. 선거법 사범의 경우 6개월 이내 결론을 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겨도 한참 어긴 기간이다.
여신의 긴장감과 일하는 속도가 이러하니 죄를 진 국회의원이 꼬박꼬박 세비를 받고 무사히 임기를 마치는가 하면, 범죄자 대통령 후보도 나올 기세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데, 우리 여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휴가도 가신다고 한다. 이런 여유가 가지고 올 가공할 결과를 우리 여신은 짐작이나 하실까.
이 모든 것 위에 가장 두려운 건 안대를 풀어헤친 여신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2027년 3월이다. 대선 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을 잃어 출마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대선 1년 전인 2026년 3월이면 사실상 이재명 후보가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유력 대선 후보의 출마 자체를 막는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도 잘못이 있으면 수사하라는 ‘공수처’도 만든 나라에서 대통령도 아닌, 야당 후보를 위해 판결을 유보한다니, 이 무슨 메가톤급 눈치 보기인가. 안대를 벗은 여신이 이제 눈치까지 봐야 한다.
하기야 특검법이 남발되는 걸 보면 문재인 정부가 만든 공수처가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최대 업적이 국방부 장관 출신 호주 대사와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국방부 차관을 출국금지시켜 호주 대사를 낙마시키고 차관을 선거에서 낙방시킨 정도인 걸 보면, 문재인 공수처는 나랏돈으로 예산을 확보해 자기들끼리 일자리 나눠 갖는 수많은 수단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문제는 아무리 굼뜨고 한가해도 우리가 기댈 곳은 정의의 여신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언론이 백날 특종하고 지식인들이 1000개의 칼럼을 써도 결국 정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존재는 여신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결국 법이다. 그러니 우리의 여신이 더 분발해 주기를 바란다. 서둘러 눈에 안대를 두르고,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자세로, 온갖 훼방꾼의 지연 작전에 지혜롭게 대처하며, 정의의 칼을 제때 잘 휘둘러 이 땅에 정의를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Lesiem / Just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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