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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사법 무력화 노리는 ‘입법독재’

 

 

대한민국은 이미 독재 시대를 겪었다. 9번의 헌법 개정 중 2번은 군사쿠데타로, 4번은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말기와 이후 박정희·전두환 대통령까지 3번을 겪고 나서야 힘겹게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독재국가가 나쁜 것은 독재 세력의 이익대로 모든 것을 실현하려 들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모든 선택권까지 무시하려 든다.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가 가능해졌다고 해서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게 아니다. 새로운 형태의 입법독재가 뿌리내리고 있다. 170석을 가진 제1야당은 전 국민 25만 원 지급을 법률로 강제하려 하고, 법관의 재량권을 옥죄는 법으로 사법권을 침범하려 든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도 일방적으로 배분해 버렸다.

 

 

이런 행태는 5년 전부터 등장했다. 거대 정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대북전단금지법,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등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사회·정치적 숙의 없이 법안을 단독 강행 처리해 왔다. 지금 낮은 대통령 지지율을 등에 업고 입법독재 시대는 본격화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처분적 법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형성하려 들지 가늠할 수도 없다. 선거에서 이겼으니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는 마인드다. 선거민주주의의 한계를 오용한 다수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행정부 독재시대를 투쟁 끝에 마감시킨 대한민국이 이젠 입법독재와 싸워야 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자신의 이념을 관철하고 남을 설득 대상으로만 여기는 도그마 정치와 세력 싸움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다. 서로 체제전쟁 속에서 밀리면 끝이라 한다. 자신과 자기 세력의 기념비적 투쟁이 주변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정화해 나갈 것이라 한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가는 사회에서 각종 권력 집단은 끊임없이 반대자들을 색출해 내며 자기의 존재 당위성을 재창출해 낸다. 친미·반미, 친일·반일, 인권·반인권, 재벌·서민, 원자력·탈원전, 경제성장·분배, 반조국(反曺國)·조국수호 프레임들 말이다.

 

 

반으로 나누기엔, 인간의 이성은 너무 예리하고 감성은 너무 복잡하다. 반이 다른 반을 죽이는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범죄행위일 뿐이다. 하이에크는 자신을 따르라고 시끄럽게 외쳐대는 사람들이 결국 인간을 ‘예종의 길(The Road to Serfdom)’로 이끈다고 말했다. 진정한 정치와 사회운동은 이런 도그마가 완성시켜 주는 게 아니다. 다양한 생각과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흩뿌리고 자신 위로 다양성을 연결시키는 것이 진정한 정치와 사회운동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도그마로부터 해방된 것이어야 한다.

 

 

지금의 야당은 모두를 예종의 길로 이끄는 이들로 북적인다. 반면, 여당 의석은 야당이 던져주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결국, 사법부까지 무력화해 입법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국가권력이 마비되게 되면 유사(類似)전체주의 체제는 한반도에서 완성되게 된다. 독재체제가 공고해진 주변 전체주의 국가들처럼 대한민국 국가체제는 행군하고 있다. 당장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뽑거나 평가하는 기본 기준부터 그 사람이 얼마나 도그마가 없느냐로 바뀌어야 한다.

 

 

글 / 문화일보 칼럼 /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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