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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팔진미(八珍味)와 인생팔미(人生八味)

by bluegull 2025. 3. 22.

음식팔진미(八珍味)와 인생팔미(人生八味)

 

 

예로부터 중국에서 성대한 음식상에 갖춘다고 하는 여덟 가지 맛있는 진귀한 음식을 일러 팔진미(八珍味)라 하였다. 그러나 팔진미의 음식종류는 시대마다 차이가 있었다. 팔진(八珍)이란 기록은 춘추전국시대 주나라 예법서인 주례(周禮)에 처음 등장한다.

 

 

주례에 보면 ‘선부는 왕의 음식과 음료 희생물과 반찬을 준비하고 이로써 왕과 왕후 세자를 봉양한다… 진미로는 8가지를 사용한다(膳夫掌王之食飮膳羞 以養王及后世子 … 珍用八物)’라 하였고 ‘식의는 마땅히 왕에게 6가지 주식… 8가지 진귀한 반찬을 준비한다( 食醫掌和王之六食… 八珍之齊)’란 말이 있다.

 

 

예기 내칙(禮記 內則)에 따르면 주례의 팔진은 순모(淳母), 순오(淳熬), 포장(炮牂), 포돈(炮豚), 도진(擣珍), 오(熬), 지(漬), 간료(肝膋)로 개, 소 돼지, 양, 사슴 등 비교적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만든 여덟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 당송(唐宋)시대와 원명청(元明淸)시대에 와서 팔진의 내용도 차이가 많고, 상당히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청나라의 유명한 만한전석(滿漢全席)에는 4가지 팔진(四八珍)까지 등장하여 야생동물의 산팔진(山八珍), 수산물 중심의 해팔진(海八珍), 날짐승 대상의 금팔진(禽八珍), 풀종류의 초팔진(草八珍)까지 등장하였다. 우리가 흔히 알려진 팔진요리는 (1)곰 발바닥(熊掌), (2)원숭이 입술(猩脣), (3)사슴 힘줄(鹿筋), (4)표범 태반(豹胎), (5)잉어 꼬리(鯉尾), (6)낙타 발굽(駝蹄), (7)낙타 혹(駱峰), (8)매미 배(蟬腹)이며, 여기에 용의 간(龍肝), 봉황의 골수(鳳髓), 모기 눈(蛟眼),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전복 등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팔진미는 맛보다 희귀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음식으로 왕이나 고관들을 위한 요리라 볼 수 있다.

 

 

다음은 인생팔미(人生八味)이다. 중용(中庸) 4장 2절에 보면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는 이가 없건마는 맛을 아는 이가 적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라는, 맛에 대한 철학적인 말이 나온다. 따라서 맛은 음식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인생에도 맛이 있다.

 

 

조선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중용’에서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생팔미(人生八味)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1미(一味)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닌 맛을 느끼기 위해 먹는 ‘음식의 맛(飮食味)’이다.

 

2미(二味) 돈을 벌기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하는 ‘직업의 맛(職業味)’이다.

 

3미(三味)는 남들이 노니까 노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풍류의 맛(風流味)’이다.

 

4미(四味)는 어쩔 수 없어서 누구를 만나는 것이 아닌 만남의 기쁨을 얻기 위해 만나는 ‘관계의 맛(關係味)’이다.

 

5미(五味)는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 봉사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봉사의 맛(奉仕味)’이다.

 

6미(六味)는 하루하루를 때우며 사는 인생이 아닌 늘 무언가를 배우며 자신이 성장해감을 느끼는 ‘배움의 맛(學習味)’이다.

 

7미(七味)는 육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느끼는 ‘건강의 맛(健康味)’이다.

 

8미(八味)는 자신의 존재를 깨우치고 완성해 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인간의 맛(人間味)’ 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8번째 ‘인간미’라고 하였다.

 

 

그리고 최근 박재희 교수의 3분 고전에서도 중용에서 언급한 ‘세상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 음식의 진정한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내용을 안타까워하면서 인생팔미’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맛이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에도 맛이 있다. 인생의 참맛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이만 먹는다고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높은 자리에 있거나 재산이 많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바꾸고 관점을 바꾸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삶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사는 것과 같다.

 

 

인생의 수명이 길어진다고 해도 인생의 맛을 모르고 나이만 먹는 다면 장수(長壽)의 의미가 없다. 송나라 유학자 소강절(邵康節:1011-1077)도 어느 날 늦은 저녁 밤하늘의 달을 보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인생의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고 읊었다. 그 일상의 맛을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라고 정의하였다. 그 맛은 누구에게도 증명할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의 맛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팔미는 지극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합천신문 애독자 여러분도 음식팔진미와 인생팔미의 참맛을 느끼면서 ‘100세 시대’에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길 바랍니다.

 

 

글 / 합천신문 / 권해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