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재판관이다!
- 어리석은 민중, 지혜롭지 못한 정치인, 공정하지 못한 재판관이 나라 망쳤다 -
BC490년 페르시아가 2만 명 이상을 동원하여 그리스를 공격하자 마라톤 평원에서 그리스는 중장비 보병 1만 명으로 맞선 결과는 아테네의 승리였고 여기에 또 하나의 경사가 생김. 아테네 인근 광산에서 은이 대량 출토되어 시민들은 일확천금의 기회였으나 데미스토 클레스는 "페르시아는 육지가 아닌 배를타고 다시 침략해 올 것이다. 미리 배를 만들어 준비해야한다."는 그의 탁월한 논리와 설득으로 광산의 은을 기반으로 200척의 배를 급히 건조하자 마라톤 전쟁 10년 후 그의 예언은 적중함.
BC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680척에 아테네그리스 연합는 370 척으로 해류의 지형을 이용해 페르시아의 배 200척을 파손, 아테네는 불과 40척 파손으로 대승을 거둠. 그러나 비극의 시작은 독제의 가능성이 있는 이름을 써넣는 도편 추방법(6000명 이 상이 나오면 추방)으로 데미스토 클래스는 국외로 추방. 페르시아가 그를 반겨주고 그리스를 공격하는 장군으로 임명하자 조국을 배신할 수 없어 자결함.
이후 BC406년 아르기누세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120척의 배를 몰고 왔을 때 아테네는 155척을 보내 대항하여 스파르타의 배 70척을 수장하고 아테네는 25척의 파손으로 대승리를 거두게 됨. 아테네 8명의 장군은 승전고를 울리며 귀환하나 영광의 기쁨은 잠시 뿐, 바다에 빠진 숨진 수 백 명의 병사의 가족들은 장군들이 병사를 방치하여 숨지게 하였다 하여 장군들을 비난하자 장군들은 "전력을 다하여 싸우느라 구할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하였음에도 시민들과 정치인이 가세하자, 장군 8명을 재판에 회부하여 모두 사형 판결, 집행 전 모두 아테네 밖으로 망명하였으나 일부는 붙들려 감옥에서 굶어 죽었음.
아르기누세 전투 이후 정확히 1년 뒤 270척의 스파르타 베에 맞서 아테네는 180척으로 싸웠으나 아테네의 배 160척이 수장되는 참패를 당함. 아테네의 장군들은 부하들의 눈치만 볼 뿐 전력을 다해 싸우는 작전을 펼치지 못했음. 결과는 아테네의 많은 시민들은 노예로 스파르타로 끌려가게 되고 그리고 그후 그리스의 맹주는 스파르타가 되었다가 BC 4세기 중반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면서 스파르타의 영광도 역사 속으로 사라짐.
나라를 망치는 자들은 어리석은 민중, 지혜롭지 못한정치인, 공정하지 못한 재판관들 이라는 것을 역사가 가르처 줌.
'리더를 위한 세상의 지식' 중에서
Lesiem / Just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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