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먹은 특검’의 대통령 기소, 어떻게 볼 것인가
초대형 부패 혐의 박영수 특검
권순일 대법관 의혹보다 더 충격
탄핵 사태 전년부터 대장동 수뢰
뇌물 사범이 특검 했다는 건가
법원 재판은 끝났지만
역사의 법정은 이제부터 시작
국회·법원·언론 등 그 누구도
역사의 평가와 심판 피할 수 없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다”라고 외친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 사람이었다. 고로 그의 주장은 참일 수 없다. 고전 논리학에 나오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다. 단지 논리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속엔 인간의 허위의식과 자가당착을 꼬집는 촌철살인이 담겨 있다. 인간세엔 소도둑이 바늘 도둑을 매타작하고, 부정한 판사가 결백한 피고인을 심판하고, 썩은 정치인이 깨끗한 공직자를 단죄하는 블랙코미디가 다반사로 펼쳐진다.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을 뇌물 먹은 범죄자로 만든 박영수 전 특검이 최근 스스로 구린 돈을 챙긴 특대형 부패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 검찰을 대신할 특별검사라면 특별히 정직하고, 청렴해야 하지 않나? 그 점에서 박 전 특검의 수뢰 혐의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보다 더 충격적이다. 술에 취한 경찰이 음주 운전자를 잡겠다며 경찰 차량을 몰면, 위법한 공무 집행이며, 그 자체가 음주 운전이다. 뇌물 먹은 자가 특검이 되어 대통령의 비리를 캐는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부조리하다. 사기 전과자의 법정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뇌물 먹은 특검의 법적 행위는 공신력(public trust)을 상실한다.
탄핵 정국에서 박 전 특검은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단을 이끌며 90일간 30명을 기소하여 13명을 결국 감옥에 보냈다. 많은 국민은 그의 활약에 열광했고, 언론들은 “가장 성공한 특검”이라 칭송했다. 한데 검찰에 따르면, 그는 이미 2015년부터 대장동 업자에게 연봉 2억원을 받고 있었고, 20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우리은행에 로비하여 1500억 원의 대출 의향서를 발급하게 했다. 진정 대통령 탄핵이란 헌정사의 위기 상황에서 뇌물 사범이 특검직을 수행하는 법조 농단이 일어났단 말인가.
당시 특검은 “경제 공동체”나 “묵시적 청탁” 등 야릇한 법률 용어로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걸었으나 네 차례 재판에서 모두 재단 출연금의 뇌물성은 부인됐다. 그는 대통령이 받은 뇌물이 433억원이라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그중 말 세 필 값 36억원을 포함한 19.8%만을 인정했다. 이제 와선 재판부의 그 판단마저도 공정성이 의심스럽다. 코드 맞춰 줄을 서고 SNS에 정치 편향의 잡글이나 써 올리는 판사들을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검만의 부패가 아니라 법조계 상당수의 타락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태평양 건너 내 귀에도 “박근혜를 법적으로 사면한 자는 문재인이고, 정치적으로 사면한 자는 박영수”라는 말이 들려온다. 탄핵 정국에서 정의의 사도로 등장했던 특검이 부패 사범으로 둔갑했기에 국민은 헷갈린다. 그 모든 아수라판은 다 무엇이었나?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정의인가?
중국 국가주석이었던 류사오치(劉少奇)는 1969년 11월 감금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문화혁명 당시 그는 홍위병 집회에서 조리돌림당하고, 가짜 뉴스에 인격을 살해당하고, 고무줄 재판에서 전 생애를 부정당했다. 그를 “역사적 반동”으로 몰기 위해 사인방은 특별조사단을 급조해서 400만 건의 문서를 파헤치고 꿰맞췄다. 법률 기술자들을 동원한 무도막심한 법조 농단이었다. 류사오치는 사후 7년이 지나 사인방이 체포될 때야 재심의 기회를 얻었고, 1980년 2월에야 명예를 회복했다. 사후 10년 3개월 만이었다. 이후 100위안 지폐에 마오쩌둥과 나란히 그의 초상화가 실렸다. 인민재판으로 처형당한 류사오치는 그렇게 역사의 법정에서 부활했다.
인간의 역사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변조(變調)되고 반복된다. 중국식 문혁의 광기가 무늬만 바꿔가며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 박 전 특검의 구속은 탄핵 정국을 되돌아보게 한다. 법원의 재판은 이미 끝이 났지만, 역사의 법정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과거의 모든 사건은 끝없이 다시 검증되고, 평가되고, 해석된다. 국회, 헌재, 검찰, 법원, 특검, 언론 등 그 누구도 역사의 평가와 심판을 면할 수 없다. 대통령과 국민도 예외가 아니다.
계산속이 뻔한 정치인들은 서둘러 탄핵의 강을 건너지만, 공화국의 시민들은 그 강을 거슬러 오르며 다시 물어야 한다.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파면은 헌법의 명령이고, 정의의 구현이고, 민주의 실현이었나? 머잖아 하늘만큼 두려운 역사의 법정에서 시대의 양심과 지성이 모여 바로 그 문제를 둘러싸고 재차 삼차 열띤 재판을 이어갈 것이다. 박 전 특검이 특대형 부패 사범으로 기소된 바로 지금이 역사의 법정을 여는 진실의 순간일 수 있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Lesiem / Just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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