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과 文 대통령이 ‘쌍둥이’가 아닌 이유
문재인 대통령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서로를
‘쌍둥이’로 부른 적이 있다.
닷새 차이를 두고 집권한
인연 때문이다.
2017년 5월 정상 통화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둘의 대선)
승리가 마치 쌍둥이 같다”고 하자,
이듬해 프랑스에 간 문 대통령이
“우리는 지향하는 가치도 비슷하다.
쌍둥이 같기도 하다”고 화답했다.
무엇보다 ‘탈원전’이 닮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뒤
가동 40년 된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와 탈원전을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집권 직후
“가동 40년이 지났거나 돼가는
원자로를 추가 폐쇄하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당시 프랑스 전력의
75%를 공급하던 원전 비율을
2035년까지 50%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흘러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에 서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1일
‘원전 르네상스’ ‘원전 유턴’
정책을 내놓았다.
원전 폐쇄 계획을 중단하고
오히려 수명을 50년으로 늘려
가동하는 것은 물론 2050년까지
새 원전을 14기 짓겠다고 했다.
그의 연설엔 인상적
대목이 여럿 있다.
“가장 탄소 배출이 적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자주적인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열쇠는
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를
모두 개발하는 복수 전략을 갖는 것”
“(원전 부활은) 국가 주권 사업”
“(원전 르네상스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자신감의 선택”이라고 했다.
원전 강국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지만 ‘탈원전 반성문’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프랑스 환경 단체와 정적들은
“기회주의적 처신”이라고 공격한다.
재선에 도전하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런 반응을 내다보지
못했을 리 없다.
‘한 입으로 두 말’ 비판을 받아도
‘늦었지만 옳은 길을 가겠다’고
해야 국민 지지를 받으리란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처럼 원전 건설 능력이 있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은
한결같이 원전과 재생 에너지
두 축으로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는
국가 전략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만 중뿔나게 굴면
그게 미스터리가 된다.
독일은 탈원전을 외치지만
자력으로 원전을
짓지 못하는 나라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반전(反轉)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마크롱의 ‘원전 유턴’ 선언이
있던 날 공교롭게도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28기 해체 계획’을 승인했다.
여기엔 신한울 1·2호기 등
아직 건설 중인 원전도 포함돼 있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7월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출한 해체 계획서를 5년 뒤
임기 말에 통과시킨 것이다.
‘잘 가라, 핵발전소’ 구호를
외치던 환경 단체 인사가
현 정권 청와대 수석으로 가더니
최근 임기 3년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
원전이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에너지원이라는 과학적 사실조차
외면하는 극단적 환경 운동가들이
각종 에너지, 환경 관련 공기업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달 초 원전의
친환경성을 인정해
‘EU 택소노미’에 포함했다.
그런데 우리 환경부는 작년 말
이미 원전을 배제한
‘K택소노미’를 서둘러 발표했다.
국제사회 움직임과 상관없이
‘끝까지 탈원전’ 분위기다.
마크롱 대통령은 원전 회귀를
‘국가 주권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원전이 자주적 국가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지금 유럽은 에너지 안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유럽 각국의 풍력발전기를 돌리던
북해(北海)의 풍속이
작년 하반기부터 20년 만에
가장 느려졌다.
발전 효율이 떨어지고
각국 전기 요금이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는 가스관 밸브를
언제 잠글지 모른다는 국가적
안보 위기감도 커진 상태다.
마크롱 대통령은
“원전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은
현실을 투명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탈원전 배반’은 국가
지도자로서 당연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박은호 사회정책부장
Kheops - Sadness & Hon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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