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의 멸공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군가 인기투표를 했다.
1위가 “높은 산 깊은 골~”로
시작하는 ‘전선을 간다’였다.
2위가 ‘멸공의 횃불’이다.
70년대 중반 보급된 노래로
후렴구가 “멸공의 횃불 아래
목숨을 건다”로 끝난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대만의 ‘자유중국 기념식’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요지가 “공산 세력이 영원히
붕괴할 때까지 단결하자”였다.
6·25 때 발행된 신문에도
‘멸공 전선에 총무장하자’
같은 표현이 보인다.
군 부대도 ‘멸공’을
경례 구호로 썼다.
‘충성·단결·필승’처럼
꽤 퍼져 있었다.
동네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할 때 ‘멸공’ 들어간
군가 소리가 섞였고,
반공 포스터 학생 콘테스트에선
표어가 으레 ‘멸공’이었다.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정도를 넘어 아예
‘뿌리를 뽑는다’는 것이었다.
사변을 겪은 뒤 냉전의 한복판을
살아가던 우리 국민에겐 절박한
사회적 다짐 같은 구호였다.
'멸공’이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지나치게 전투적인 냉전 시대
용어라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 시대가 열리면서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했다.
예비역 모임, 종교 단체 이름에
‘멸공’이 들어간 사례가
없진 않으나 이미 ‘두루
쓰이는 말’은 아니었다.
옆에서 이 말이 들리면
돌아볼 지경이다.
방송에선 거의 안 쓴다.
마치 ‘괴뢰군’이라는 표현처럼.
그랬던 ‘멸공’이 요 며칠 새
핫한 단어가 됐다.
지난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숙취 해소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
이란 글을 올렸다.
그는 두 달 전에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써서
주목을 끌었다.
인스타그램은 ‘멸공’이
“폭력을 선동한다”면서 삭제했고,
정 부회장은 “이게 왜
폭력 선동이냐”며 맞섰다.
해볼 테면 해보자고 덤볐다.
그러자 인스타그램이
“시스템 오류였다”며 물러섰고
게시물은 복구됐다.
조국 전 법무가 정 부회장을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고
헐뜯고 나서면서 사태는
대선판으로 번져 있다.
윤석열 후보는 이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골라
장을 봤는데, 누가 봐도
‘멸공’을 뜻했다.
여당 쪽에선 ‘중국을
자극 말라’며 발끈했지만,
정 부회장은 “오로지
위(북한)에 있는 애들을
향한 멸공”이라고 했다.
어제 야권 관계자들이
릴레이하듯 멸치·콩 사진을
올리며 윤 후보와
정 부회장을 응원하고 있다.
정권이 5년 내내 북한
김정은에게 저자세로 끌려 다닌 데
대한 국민적 반감이
만만치 않다는 뜻일 것이다.
글 / 김광일 논설위원
멸공경끼 : 멸공! 구호에 깜짝 놀라 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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