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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글

헌법이 무의미한 종이 쪼가리가 되는 이유

by bluegull 2025. 2. 28.

헌법이 무의미한 종이 쪼가리가 되는 이유

 

 

19세기 남미 신생국들 헌법은 지켜지지 않아 무용지물 전락
정치가 절제와 상식을 잃으면 법은 설 자리 잃고 무의미해져

 

 

지난 12월 계엄과 이어진 탄핵 사태를 겪으며 헌법 자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헌법 필사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대학가에선 헌법 관련 각종 강좌의 수강률이 치솟았다. 어느 나라건 평소라면 국민이 헌법의 구체적 내용에 관심 가질 일은 거의 없다. 헌법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은 법을 자기들 유불리에 따라 아전인수식으로 적용하거나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써먹는 행태를 보게 된 국민이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자구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9세기 초, 라틴아메리카에선 건국 과정에서 선진국 헌법 베끼기가 있었다. 남미의 독립운동가들이 독립 투쟁과 함께 그들이 본보기로 삼았던 나라들의 헌법을 공부했다. 그중 남미 독립운동의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를 포함한 70여 명은 런던에 머물며 영국 헌정 질서를 배우고 귀국 후 헌법을 제정했다. 그렇게 탄생한 남미 각국 헌법은 지금 기준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국민주권, 권력 분점 등 헌법의 주요소가 빠짐없이 망라됐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는 헌법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남미 각국 헌정은 잦은 쿠데타와 독재로 수없이 중단됐다. 1810년부터 20년 동안 베네수엘라 헌법은 6번, 멕시코는 20번 넘게 바뀌었다. 멕시코는 20세기에도 170번 넘게 헌법이 바뀌었다. 이런 혼란을 목도한 볼리바르는 “우리 헌법은 무의미한 텍스트다”라고 비통하게 선언했다. 남미의 헌정 혼란사는 헌법을 지키는 것은 ‘종이에 어떤 조문을 넣느냐’ 못지않게 그걸 운용하는 이들의 헌정 수호 의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은 뚜렷한 성문 법전을 갖지 않은 나라다. 영국 헌법의 시초로 꼽히는 대헌장이 만들어진 13세기부터 17세기 제정된 권리청원과 권리장전 이후 영국에는 사실상 성문 헌법이 없었다. 그러고도 세계 각국 민주주의 발전의 귀감이 됐다.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헌법의 역할을 연구한 영국 역사학자 린다 콜리는 저서 ‘총, 선, 펜’에서 영국 민주주의 헌정의 힘은 구체적 법조문뿐 아니라 국왕과 의회(또는 국민)의 ‘합의’라는 오랜 전통에서도 나온다고 설명한다.

 

 

헌법을 비롯해 모든 법은, 비유하자면 구멍이 숭숭 뚫린 성긴 그물이다. 영국인들은 그 빈 곳을 보편적인 상식과 배려, 제도적 절제 같은 무형의 가치로 채웠다. 물론, 이런 가치는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려는 이들 손에 훼손되기도 한다. 1685년 영국 왕 제임스 2세는 법의 빈틈을 이용해 북미 식민지에서 주민 동의 없이 담배와 설탕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했다. 식민지 주민들이 “모든 영국인을 보호하는 대헌장의 정신을 국왕이 무시했다”며 반발하자 왕은 “영국 헌법은 영국 섬에만 적용된다”는 해괴한 논리로 이를 억눌렀다. 국왕의 제멋대로 법 해석은 미국 독립운동의 단초가 됐다.

 

 

대약진운동 실패로 주석직을 내놨던 마오쩌둥이 이를 되찾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발동하며 내건 모토가 조반유리(造反有理)였다.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반대가 적절한지는 따지지 않았다. 그 후 홍위병들은 양심의 가책을 내던지고 폭주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맹점이 대한민국 법에도 있다. 한국 법은 국회 다수가 탄핵소추할 때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간주한다. 그 소추가 적절했는지 따지지 않고 전적으로 의원들 양식에 맡긴다. 계엄 발동이란 중대한 법적 행위도 사실상 대통령의 양식에 맡겨져 있다. 아무리 법조문을 정밀하게 손본다 한들 탄핵 남발과 모험적 계엄 발동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법을 법답게 완성하는 주체는 법조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절제와 상식을 잃고 폭주하는 극단적 정치 풍토에서 헌법이 설 자리는 칼날보다도 좁다.

 

 

조선일보 칼럼 /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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