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범과 정치범을 구별하는 법
중립 지대는 교도소 닮아
정치범은 나라 미래 생각하고
잡범은 오로지 출소 후 걱정
‘정치 잡범’ 농단 막아야
‘3류’는 딱 봐도 그의 직업을 알 수 있다. 3류 경찰, 3류 기자, 3류 주먹, 3류 국회의원 등은 겉으로 표시가 난다. 어깨 흔들며 거들먹거리고, 힘없는 상인에게 돈 뜯고, 장관에게 반말로 다그치고, 무엇보다 특권 의식에 절어 있고, 부끄러움이 없다. 소설가 김영하가 일찍이 한 말이다. 그들은 잡범 라벨을 이마에 붙이고 다닌다. 3류 땟국이 줄줄이 흐르는 그들이 노는 동네가 있다. 주인 없는 곳,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중간한 곳에서 활개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게 되면 배신감을 느낀다.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깨진 연애의 후일담 같은 것이다. 그러다 무당층, 중간파, 중도, 부동층 같은, 뭐라 불러도 좋은데, ‘그냥 나좀 내버려 둬 그룹’이 되는 것이다. 이해한다. 양심 엿 바꿔 먹고, 남 생각 절대 안 하고, 국민 상대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부류들 때문에 울화가 치밀 것이다. 선출직 공직자인지 ‘여의도 3류 건달들’인지 그들에게 실망하고 관심을 끊어버렸던 심정, 누가 모르겠는가. 차라리 무기를 든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선배 한 분은 젊었을 때 열렬한 좌파 ‘데모꾼’이었다. 머리 희끗해진 뒤로 열렬한 보수 우파로 변했다. 그런데 최근 만나면 “나는 중도야. 중립이라고. 원래 그랬어”라고 한다. 이해한다. 친구들도, 자식들도, 그리고 배우자까지도 그분의 ‘정치적 선택’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다. ‘선택을 드러내놓고 밝히는 일’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러고 싶잖은 것이다, 무책임한 염세주의자 소릴 들을망정.
이런 분들이 정치적 선택을 포기하고 등 돌린 사이에 ‘중도’라는 미명 하에 누적되는 ‘빈 공간’을 먼저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동물적 본능으로 먼저 달려와 빈 곳을 차지하는 세력은 능력과 혜안을 갖춘 미래파가 아니라 귀 얇은 유권자의 약점을 귀신같이 파고드는 야바위 협잡꾼이다.
잠정적 무주공산인 중립 지대는 기묘한 교도소를 닮았는데, 그곳에는 정치범과 잡범이 뒤섞인다. ‘범털’인 정치범은 삭발, 단식, 분신 시도 같은 투쟁을 할 때가 있다. ‘개털’인 잡범도 가끔 흉내를 낸다. 정치범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는 반면, 잡범은 오로지 출소 후를 생각한다. 정치범은 이념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잡범은 졸개를 모아서 선동을 한다.
팩트와 진실은 중립이 아니다. 가짜 괴담의 반대편에 있다. 2024년 봄 총선 이튿날 미래 세대에게 해명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것에 덧붙여 행동해야 했을 때 침묵한 것까지 포함한다. 침묵하는 중립은 잡범을 돕는 것이다.
광복 후 해방 정국 몇 년 동안 이른바 중간파는 자유 대한민국 출범을 망칠 뻔했다. 1948년 남한에서 총선이 치러졌을 때 이승만은 선거의 본질은 자유주의를 따르는 민족주의자들과 전체주의를 따르는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대결임을 일깨웠다. 소설가 복거일이 본지 연재물에 인용하고 있듯이 이승만은 “민족 진영에서 어떤 개인이나 어떤 단체가 승리할까가 우리의 문제가 아니요, 오직 독립주의와 독립 반대주의와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기회만 엿보는 중간주의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주의가 성공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해서 투표해야 한다”고 했다.
2020년 총선 결과는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수가 엄청나게 왜곡됐다. 득표율에 비해 80석을 더 얻은 정당이 있는가 하면 5분의 1로 졸아든 정당도 있었다. 국민의 뜻이 극적으로 전도된 의회 구성은 정치 잡범들의 농단으로 선거제가 유린됐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같은 결과를 막으려면 ‘중간주의 잡범 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김광일 논설위원
Lesiem / Justi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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