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님도 안 하는 나라 걱정을 국민이 한다
국민은 ‘공돈 유혹’ 거부했지만
대선 앞둔 정부는 또 돈 뿌리기
국민만 나라 걱정 하는 나라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1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느냐,
소득 하위 70%에게만
주느냐를 놓고
민주당과 기획재정부가
힘겨루기를 하던 때가
지난해 4월이었다.
이 무렵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 국민 지급 찬성이 30.2%,
70% 지급이 28.9%,
모름·무응답이 40.9%로 나왔다.
만약 내가 전화를 받았다면
선별 지급에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코로나로 아무런 피해 본 게 없는
나 같은 직장인까지 왜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아야 하나.
총선을 앞두고 돈으로
표를 사겠다는 얄팍한 속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전 국민 지급’으로
결정돼 받게 된 ‘공돈’의 맛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내가 지원금을 사양하더라도
어차피 나랏돈은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거나,
관변 시민 단체들이 나눠 먹거나,
강의실 불 끄기 알바를 채용하느라
허무하게 사라질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 아들조차
나라에서 지원금을 수천만원
타 간 뒤 뭐가 문제냐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나 같은 소시민이 나랏돈
몇 십만 원 받든 안 받든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받은 지원금은
애 학원비 내고
치킨 사 먹이는 데 썼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한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돈을 받기 전 조사에서
재난지원금을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20%였지만,
실제로 기부한 금액은
0.2%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번 5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지난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 국민 지급에
찬성하는 의견이 38.7%밖에
안되는 걸 보고 내심 놀랐다.
80% 지급이 42.8%,
‘지급할 필요 없다’가 16.9%였다.
경기도가 독자적으로 전 도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겠다는 계획에도
경기도민 39%가 반대했다.
‘공돈’의 단맛을 경험한
국민 대다수가 자제력과
분별심을 발휘한 것이다.
김부겸 총리 말대로
‘현금 대신 자부심’을 택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 ‘나랏돈을 이렇게
막 써도 되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며
여러 개발도상국을 돌아다닌
경력이 있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국가에서 돈을 주겠다고 하는데
나라 곳간 걱정하는 국민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기어코 전 국민 지급을
놓고 좌충우돌하다
‘88%’라는 기형적 결론을 냈다.
지난 총선 때 현금 살포 정책의
단맛을 잊지 못한 민주당과,
재정을 아꼈다고 자위하고 싶은
기재부 관료들의 정신 승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애초 “코로나가 종식되는 상황이
오면 온 국민이 힘을 내자는
취지에서 전 국민을 위로하고
소비도 진작할 수 있는
지원금을 검토하라”는 대통령
지시로 시작된 5차 지원금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왜 나랏돈으로
선심을 쓰나.
관직을 떠난 뒤 전국 민생 탐방을
다닌 김동연 전 부총리는
“전남 여수의 한 어촌을
방문했을 때 어떤 분이 ‘예전엔
나라가 국민을 걱정했는데
요즘은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들은 지원금을 굳이 모두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연봉 1억5000만원을 받는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확인해 보니 나도 재난지원금
대상이 아니더라.
전 국민에게 지급했어야
한다”고 한다.
나라님들도 안 하는 나라
걱정을 국민만 한다.
국민들의 이런 유별난 애국심과
분별력이 지금까지 한국을
지탱해온 것일 테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비정상이 영원히 갈 수는 없다.
다시 국민을 걱정하는
나라가 되든가,
결국 국민도
나라 걱정을 포기하든가.
아마 내년 대선 때쯤에는
판가름 나지 않을까 싶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최규민 에버그린콘텐츠부 차장
Julie Covington - Don't Cry For Me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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