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市場)으로 가는 길

Ⅰ

‘스카버러 장터’(Scarborough Fair)로 가는 길은 멀지 않다. 그러나 당신은 그곳에 직접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웃이 그 장터에서 팔기 위해 들고 나가는 파슬리, 세이지, 로즈메리, 타임 등의 야생초들에게 은밀한 부탁을 한다. 이런 야생초들이 팔리는 계절이라면 아마도 요즘 같은 늦봄이나 초여름이었으리라. 그 야생초에게 스카버러에 있는 자신의 옛 연인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당부를 한다. 그 여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고운 모시로 셔츠를 만들어 달라는 소식을 전해 달라고. 그 옷에 바느질 자국이나 이음새 자국이 없다면 그건 하늘이 점지해 준 연분일 것이라고. 누군가에게 꼭 맞는 모시 셔츠를 만듦은 옷을 지어 주는 사람, 곧 ‘배필’이 됨을 증명함과 같다. 동양에 사는 우리 또한 견우(牽牛)의 연인을 옷 짓는 여자, 즉 직녀(織女)라 부름에 친숙해 있고 이음매 없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옷을 귀하게 여겼다.

스카버러(Scarborough)는 영국 중부의 실존 도시이다. 그 도시의 어원을 바이킹족의 복잡한 이름을 따지지 말고 글자 그대로 상흔(scar)을 지닌 지역쯤으로 임의로 그려 보자. 헨리 3세는 1253년(1월 22일) 칙령을 내려 그 주민들이 매년 약 45일간(8월 15일 ~ 9월 29일)까지 시장을 열어도 된다고 허락했다. 당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긴 기간을 허락받은 시장이었고, 영국 전역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지역 및 비잔틴 제국도 여기까지 장사를 하러 왔다. 이 자유로운 시장에 관한 로망은 구전 노래 ‘Scarborough Fair’로 남았고 현대에 사이먼과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듀엣 화음으로 널리 유명해졌다. 스카버러 시장은 5백년을 이어오다 세금이 높아지고, 무엇보다도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시장들이 나타나자 경쟁을 버티지 못해 결국 1788년 사라진다. 자유 시장은 경쟁을 안고 감이 불가피하니. 거기서는 ‘항구적인 안정 해(解)’는 존재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새로운 조절을 찾아가는 적응만이 있을 뿐이다.

Ⅱ

스카버러 시장이 사라지기 약 백 년 전쯤 청나라 전성기인 1685년 중국 강희제(康熙帝)는 광조우 등에 세관을 설치한다. 이때 독점무역상이자 동시에 관세 수납을 대행하는 무역업체인 『광조우 13행』이 탄생한다.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교역을 독점하는 특혜업체이고 지대추구(rent-seeking)의 생생한 예이다. 『광조우 13행』 중 가장 유명한 업체가 이화행(怡和行)이고, 그 대표는 광조우 상인 오병감(伍秉鑒, 1769~1843년)이었다. 스카버러 시장과는 달리 국가 권력이 보호해주는 오병감에겐 아무런 경쟁자가 없었다. 그는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지난 천년 간 역사에 나타난 거부 50인 중 한 명이었다. 한때 오병감 집안의 보유 현금은 2천 600만 은원(銀元)으로 청나라 연간 세입의 절반이었다. 그 시기 미국 최대 부자의 자산은 700만 은원에 불과했다. 오병감은 뇌물로 벼슬을 샀고 정부 관료들도 헌납이란 명분으로만 그에게서 모두 500만 은원 이상을 수탈했는데, 이는 1773~1835년 간 공식 기록만 본 것이다. 정치권력과 결합한 시장독점 업체의 특권은 이 정도의 비용을 치르고도 인류사 중 최대 거부를 만들어 내었다.

이 이야기는 중국만의 역사는 아니다. 오병감은 자신의 밑에서 8년을 양자로 일을 배우던 미국인 ‘점원’을 총애했다. 그가 미국으로 귀국할 때 그에게 거액을 쥐어 준다. 그 점원은 귀국하여 미국 철도 사업에 투자해 최대 부호가 된 존 머리 포브스였다. 금력(金力)을 장악한 거대 독점 자본가 존 머리 포브스는 지식과 예술 영역까지 손을 뻗쳤다. 그는 저명한 초월주의 사상가 랠프 왈도 에머슨과 2대에 걸쳐 혼 맥을 맺어 포브스 집안과 에머슨 집안은 겹사돈이 된다. 존 머리 포브스의 사촌으로 중국에서 종자 및 아편 사업을 하던 사람이 프랜시스 블랙웰이다. 2004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조지 W. 부시(아들)에게 패한 존 포브스 케리 상원의원은 모계로 보면 프랜시스 블랙웰 포브스의 5대손이다. 미국의 이 명문 포브스 가문 발흥의 원천이 청나라의 독점적 지대추구업자 오병감이었던 것이다.

중국의 이중톈(易中天) 교수는 “베이징은 성(城)이요, 상하이는 탄(灘)이며, 광저우는 시(市)”라고 도시의 성품을 규정했다. 이들 도시는 각각 나라를 다스리는 도시(城), 물길로 연결된 소통의 도시(灘), 장사하는 도시(市)란 뜻이다. 하필이면 시장의 도시 광조우에서 중국 역사가 바뀐 것이 “아편전쟁”이다. 아편전쟁의 한 의미는 독점무역권을 부여받은 중국 길드조합과 청국 왕실과 맺은 지대 연합(rent coalition)이 자유 무역주의에 패배한 사건이다. 그 패전 후 영국-중국 간 난징조약으로 독점무역권이 사라지자 마침내 찬란했던 『광조우 13행』은 1843년에 마침내 막을 내린다. 『광조우 13행』의 무역 독점권이 사라지면서 오병감의 영광도 사라지고, 그를 통해 국가 재정수입 및 상납의 떡을 챙기던 청 황실도 붕괴했다. 오병감은 아편전쟁 패전 후 떠안게 된 청의 배상금 2100만 은원 중 100만 은원을 부담하고는 매국노와 애국자란 이름을 동시에 받고 사망하였다.

아편전쟁으로 청(淸)의 고루한 국가 질서가 붕괴된 후 중화민국과 중공의 두 체제로 분리되는 진통을 겪었다. 또 중공 내부로는 조악한 공산주의 실험으로 치명적 경제 실패들을 낳았지만 뒤늦게 궤도를 수정한 뒤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편전쟁은 중국에게 준 ‘예상치 못한 축복’이었다. 수 천년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기아를 면하게 된 것은 황제의 선정(善政)이 아니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주의도 아니다. 중국 공산주의가 그토록 경멸하고 파괴하려 했던 “시장경제”가 그것을 이룩했다. 인류 역사상 자유 시장경제로 구조 받은 기아민이 가장 많은 나라가 중국이다. 국가권력과 결탁한 거대 국가독점 무역이 자유무역을 원하는 무역상들에 의해 붕괴된 것이 ‘아편전쟁(阿片戰爭)’이었다. 좀 비약한다면, 수많은 스카버러의 여러 작은 장사치들이 인류 역사상 최대 거부 한 명을 낳은 중국의 거대 지대추구 연합체를 무너뜨린 것이다. 중국이 만약 영국에게 패하지 않았더라면 청나라의 거대 지대 연합체제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고, 독점업체와 황실만 행복하고 모든 국민이 불행한 시절은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아편전쟁 패배는 중국의 긴 역사에서 뜻밖의 축복이었다. 최대 부국의 하나인 홍콩을 낳았고, 동시에 중국의 개방에 대한 실습을 보여주었다.

Ⅲ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조건에는 어떤 ‘제도’가 필수적이다. 사유재산권 및 법의 지배는 가장 주요한 제도 요소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로 제도(institution)의 의미를 재해석한다면 시장경제는 그런 ‘공식적 제도’ 외에 ‘비공식적인 제도’ 요소들도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문화(culture), 곧 “가치에 대한 공유된 인식” 말이다. 막스 웨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기독교 개신교도의 신앙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나타났음을 연역하였다. 맥클로스키(Deidre McCloskey)에 의하면 “부르주아의 미덕”(bourgeois virtues)이라는 요소 없이는 자본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공식적 제도 외에 “문화”라는 ‘공유된 의식’ 요소까지 요구된다는 것은 시장경제란 단지 기계의 작동 절차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 교호하는 역동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실은, 사유재산권 제도 및 법의 지배라는 공식적 제도조차도 이 문화적 요소 없이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기적 인간들이 서로 경쟁하는 시장경제가 상호 약탈로 이어지지 않고 ‘호혜의 거래제도’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간 본유의 시기(envy)라는 치명적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개신교도의 윤리나 부르주와의 덕성(德性)을 통해서 가능하였다. 반대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는 나보다 더 뛰어난 타인에 대한 시기 때문에 평등화(平等化)로 인간을 유도하기 때문에 공동체 속 개인들은 재산의 개인별 축적을 그만두고 ‘똑같이 나누어 먹는 것’에 동의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개인주의(individualism)라는 믿음 체계가 필수적이다. 바로 이 부분이다. 쇼왝(Helmut Schoeck)은 기독교 윤리가 인간의 본능인 ‘시기’를 없애기보다는 그걸 억제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나타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 앞의 모두가 존귀한 ‘독립적 자아’라고 보는 기독교가 “개인주의를 발명”했다. 요컨대, 시장경제의 발전에는 공식적 제도 외에 ‘개인’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5천 혹은 1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형성된 원시적 공동체주의 유전자에 사로잡혀 있던 인간이 그 본유의 시기심(猜忌心)을 다 버리라는 도달 불가한 윤리를 강요받기보다는 시기심을 도덕적으로 절제하면서 동시에 “나”라는 ‘개인’의 가치를 확신하는 순간에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개인의 발명’은 그 어떤 요소보다 시장경제의 확립에 결정적 요소였다.

개인은 서구 자유주의의 뿌리이다. “개인의 발명”은 시장경제로 결코 끝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유주의’를 낳는다. 그래서 사이든탑(Larry Sidentop)은 “개인”이야말로 곧 ‘자유주의(liberalism)의 원천’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전개한다. 스카버러 시장은 500년쯤 버티다 경쟁에 패해 사라졌지만 그게 사라지기 직전, 인류 역사상 시장경제 원리를 최초로 가장 체계적으로 묘사한 한 스코틀랜드 철학자가 이를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라 불렀음은 바로 이 점을 정확히 직시했기 때문이다. 커먼로(common law) 체제 아래서 유독 시장경제가 잘 발전할 수 있었음은 이를 명증한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는 정치와 경제가 별개의 질서가 아니라 곧 시장경제가 자유 민주주의의 토대라는 것이다. 남이 시장에 가면 거름이라도 지고 따라감은 흉이 아니다. 언뜻 속되어 보이지만 그 위대한 행로 때문에 불과 몇 세기 만에 경제 및 정치의 혁명적 진보를 이룩한 것이다.

Ⅳ

시장을 정치로 구속함은 역사 발전의 인과관계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오히려 시장은 잠시 정치에 눌리는 듯하나 결국엔 정치 및 정치인조차 스카버러 장터에서 거래되게 만든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정치 및 정치인을 ‘나쁜 재화’로, 그 반대 경우를 ‘좋은 재화’로 거래되도록 한다. 나쁜 정치인일수록 시장 억압에 기를 쓰는 이유는 거기서 자신들이 열등재(劣等財)임을 알기 때문이다. 칙령으로 스카버러 시장을 열게 만든 헨리 3세든, 초기의 국가중심적 자원배분으로 출발했으되 결국 ‘시장경제의 틀’을 놓은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이나 싱가포르의 리콴유 수상이든 결국 ‘시장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한 가지 투박한 진리는 놀라울 정도로 간명하다. 스카버러 시장으로 가는 자는 돈과 연인을 얻되, 그 시장으로 가는 길을 거부하는 자는 빈곤과 고독을 얻을 뿐.

글 /『제도와 경제』(15권 2호. 2021.05.31) 권두언 / 김행범(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공공선택학)
사진 / 현재의 Scarborough

'사이먼 & 가펑클'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는 구전해오던 민요를 1947년에 '이완 맥콜 (Ewan MacColl, 영국 포크송 가수)'이 영국의 광부 '마크 앤더슨(Mark Anderson, 1874-1953)'으로부터 수집한 것입니다. 이 버전은 1960년대 영국 포크송 듀오 "사이먼 & 가펑클"이 '마틴 카시 (Martin Carthy, 1941~)'로부터 배워서 만든 곡입니다. 이 멜로디와 비슷한 가사를 가진 수많은 '스카보로 페어'곡이 발표되었고, 그 중에서 사이먼 & 가펑클 버전이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두개의 멜로디가 흐르는 대위법으로, 원래 가사는 각 남녀가 서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요청을 서로가 하는 것이다.
Simon & Garfunkel - Scarborough Fair (Full Version) Lyrics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스카보로 박람회에 가시나요?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백리향 허브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세요.
그녀는 한때 내가 진정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Tell her to make me a cambric shirt
(On the side of a hill, in the deep forest green)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Tracing of sparrow on snow-crested ground)
Without no seams nor needlework
(Blankets and bedclothes, the child of the mountain)
Then she'll be a true love of mine
(Sleeps unaware of the clarion call)
그녀에게 캠브릭 셔츠를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말해주세요.
(언덕 옆으로 깊은 숲속의 녹음이 진 곳)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
(눈 덮인 땅에서 참새를 따라가)
심(seam)이 없거나 바느질 없이 (셔츠를 만들어 달라고)
(담요와 침구, 산에 사는 아이들)
그리 해주면 그녀는 내게 진정한 사랑이 될 겁니다.
(전쟁나팔 소리도 모른 채로 잠이 듭니다)
Tell her to find me an acre of land
(On the side of a hill, a sprinkling of leaves)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Washes the grave with silvery tears)
Between the saltwater and the sea strands
(A soldier cleans and polishes a gun)
Then she'll be a true love of mine
그녀에게 해안가에서 1에이커의 땅을 찾아달라고 말해 주세요.
(언덕 옆으로 나뭇잎이 흩뿌려진 곳)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
(은빛의 눈물로 무덤을 쓸어냅니다)
해안과 바다 사이에 (있는 1에이커의 땅)
(한 군인이 총을 닦고 광을 냅니다)
그리 해주면 그녀는 내게 진정한 사랑이 될 겁니다.
Tell her to reap it with a sickle of leather
(War bellows, blazing in scarlet battalions)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Generals order their soldiers to kill)
And gather it all in a bunch of heather
(And to fight for a cause they've long ago forgotten)
Then she'll be a true love of mine
그녀에게 가죽낫으로 농작물을 수확하라고 말해 주세요.
(주홍빛 부대에서 울려 터지는 전쟁 나팔 소리들)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
(장군이 병사들에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다 모아서 야생화 한다발로 모으세요.
(오래전에 잊혀진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라고)
그리 해주면 그녀는 내게 진정한 사랑이 될 겁니다.
Are you going to Scarborough Fair?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스카보로 박람회에 가시나요?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백리향 허브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세요.
그녀는 한때 내가 진정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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