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규제가 낳은 재앙들
여당 대선 후보가
“자살할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불량 식품 먹는 것,
굶어 죽을 자유,
이런 건 아니지 않나.
마구 식당을 열어서 망하는
것도 자유가 아니다.
불나방이 촛불에 타 죽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제기한 음식점 허가 총량제는
해프닝으로 끝난
것 같아 다행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과
주 4일 근무제”는
“장기적 과제”라는
수식어로 논란은 피해 갔지만
“선량한 국가에 의한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인 말에서 “규제에 의한
문제 해결”에 미련을 드러냈다.
모든 국가는 선량하다.
어떤 정부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국민에게 해로운
규제를 감행하겠는가?
선량하지 않은 규제가 있고
선량한 규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역효과가 나거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규제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경제 문제에서는 규제가
대개 다 그래서 더 문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주 선량한 이 정부의
선량한 정책 결과를 보자.
출범 초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좀 더 빠른 속도로 올려서
이들의 소비 증가로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내수 진작과 성장 회복의
선순환을 촉발하겠다고 하는
선량한 의도에서 추진했다.
그러나 노동에 대한
수요를 줄여 일자리를 잃거나
얻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자영업자도 일부 망하고
일부 소득이 줄어서
전체적으로 저소득층
소득은 늘지 못해
내수 진작 효과도 대부분
상쇄되고 말았다.
얻는 것만 보고 잃는 것을
제대로 보지 않은 이 규제는
선량한 결과를 전혀 얻지 못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국민을 과로에서 해방시키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해 주려는 선량한 의도에서
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소득 감소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초과 근무 수당으로 벌던 만큼을
다른 곳에서 벌충하느라
더 많은 시간 일해야 했고,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더
허비하게 만드는
이상한 결과를 낳았다.
초과 근무가 줄어서
수입이 줄어든 조선소 등
제조업의 숙련공들이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고
일한 만큼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는 배달 일로
떠나버려 일감을 받아도
생산할 인력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행한,
이제는 몇 차례인지
헤아리기도 어려운 그 수많은
부동산 규제도 모두
선량한 국가가 선량한 의도로
한 것이지만 결과는 정부 스스로
실패를 시인한 바와 같다.
말년에 와서 공급 확대로
돌아서고 새 서울시장이
규제를 많이 풀고서야 집값이
안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급한 탈탄소 규제가
낳은 결과를 보라.
세계 각국이 유행처럼 석탄, 석유
개발에 대한 투자를 규제한 결과
그동안 원유가 앙등을
잘 제어해 왔던 셰일오일
산업을 무력화시켰고,
북해와 중국 동북부의 풍력발전에
차질이 생기자 에너지 대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선량한 규제라고 하더라도,
절차와 속도만 잘못돼도
어떤 재앙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체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값을 싸게 해서 자연스럽게
화석 에너지를 덜 쓰게
만들었으면 이런 재앙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탈원전까지
과속하고 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 따로 없다.
규제는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획일성을 조금만 완화해 주면
폐해를 많이 줄일 수 있는데도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당신에게 더 좋은지를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안다”는
오만한 정치인들은 그런
유연성을 허용할 줄 모른다.
최저임금 인상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임금 수준에서라도
일자리를 지키거나
취직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전자를 위해서 더 어려운
처지의 후자를 희생하는 것이
과연 선량한 규제인가?
획일성 하나 때문에라도
규제는 선량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규제는 다른 어떤
수단도 없을 때에나
생각해 볼 필요악 같은 것이다.
경제 문제는 규제나
적자 재정에 의한 나랏돈
퍼주기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해결할 수 있다면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는 왜 있으며
가난한 나라는 왜 있겠는가?
자유가 필요한 국민에게는 자유를,
복지가 필요한 국민에게는 복지를
주는 융통성이라도 있어야
나라를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
대선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규제 혁파를
약속하지 않은 후보도 없고
규제 혁파에 성공한
대통령도 없었다.
공약은 남이 써 주는 것이다.
그 후보가 지금까지
한 말과 행적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Andy Williams / Born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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