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望詞(춘망사) / 薛濤(설도)
![]() 其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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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도’(薛濤)의 ‘봄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뜻의 이 ‘춘망사’(春望詞)는 시인 ‘김억’(金億)이 ‘동심초’(同心草)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옮긴 바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나 지은이는 잘 몰라도 ‘동심초’라는 가곡과 가사는 잘 압니다. 시쳇말로 ‘오리지널’은 몰라도 ‘짝퉁’은 잘 아는 셈입니다. 이 시는 ‘춘망사’ 4수 가운데 제3수입니다.
![]() ‘설도’(薛濤, 768-832)는 중당(中唐) 시인으로 기생입니다. 자는 ‘홍도’(洪度)로 장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촉(蜀)의 성도(成都)로 옮겼고 후에 기생이 되었습니다. 총명하고 기지가 풍부하며 시작(詩作)에 능해 ‘원진’(元稹), ‘무원형’(武元衡) 등 많은 선비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절구(絶句)를 잘 썼으며 스스로 만든 붉은 종이에 섬세하고 감상적인 정취의 시를 썼습니다. 그녀는 수질이 좋은 물을 사용하여 단시를 쓰기에 안성맞춤인 소형 편지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종이가 바로 ‘설도전’(薛濤箋)이며 많은 사람에게 애용되었고 지금까지 전해 옵니다. 오늘날 성도의 망강공원(望江公園) 안에 그녀가 종이를 떴던 ‘설도정’(薛濤井) 등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 ‘설도’(薛濤)의 시적 재능이 꽃을 피워 성도의 명기(名妓)로 알려진 것은 정원(貞元) 연간(785-805) 초기에 ‘위고’(韋皐)가 서천 절도사로 부임한 뒤부터였습니다. 이때 ‘설도’는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나이였고, ‘위고’는 마흔 줄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위고’는 ‘설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후원자 ‘위고’의 강력한 뒷받침으로 기생 시인 ‘설도’의 명성은 성도 일대만이 아니라 곧 수도 장안까지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결코 허명(虛名)이 아니어서 시인으로서 ‘설도’의 성장은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장기는 4행시인 절구(絶句)였습니다. 그녀는 이 단시(短詩)로 뛰어난 감각과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 ‘설도’는 아주 영리한 여인이었습니다. 절대로 사사로운 감정에 빠지는 일 없이 자신을 억제했고 그 결과 평온한 만년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종일관 냉정함을 유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후원자 ‘위고’가 죽은 뒤 그 당시 유명한 시인이자 무려 열한 살이나 연하인 ‘원진’(元稹)과 의기투합한 적도 있었으나 사랑을 완성치는 못했습니다. 그 밖에도 당대의 유명한 문인, 관료, 처사 등 뭇 남성들이 ‘설도’의 연인이었으며 그들과의 교류는 ‘전당시’(全唐詩) 안에 수록된 여러 시인들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설도’가 알고 지낸 문인은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왕건(王建), 장적(張籍) 등입니다. 관료나 장수들로는 고숭문(高崇文), 단문창(段文昌), 이덕유(李德裕) 등 20여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설도’는 자제력을 발휘해서 기생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만년에는 기적(妓籍)에서 나와 여도사(女道士)로 여생을 마쳤다고 전해집니다.
![]() 사진 / Blue Gu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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