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억을 잊은 국민
독일에서는 일반 국민 사이에서
자국의 대(對)러시아 유화정책에
대한 반성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국민 74%가
“경제에 악영향이 있어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두 나라 국민이 갖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높은 관심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이 나온다.
“2차 대전의 기억이 생생한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란 것이다.
독일에서는 67세 이상 인구의 30%,
약 480만명이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를 보며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고통을 곁에서 보고 들은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남의 일일 수 없다.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후손에게 전해진다.
한국 역시 비슷한 세대가
6·25 전쟁을 겪었다.
동족 상잔의 비극 속에
3000만 인구 중 200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됐다.
가족 중 전쟁 피해자 없는
이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2차 대전 참상과 비교해
그 강도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런 전쟁을 겪은 수백만명이
아직 생존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철저히 ‘남의 일’로 외면당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국회 연설에 달랑 50명 의원이
출석한 사실만 봐도 그렇다.
독일·일본과 비교하면
전쟁에 대한 기억이 조직적으로
억압 당한 결과는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식민지 때
기억은 잊지 않고 소환하면서,
6·25전쟁의 기억은 금기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호국 영령’을 기리는 6월의 행사는
6·25전쟁 사망자가 아닌
독립운동가를 위한 행사로 바뀌었다.
6·25 참전자와 상이용사,
그 후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무관심을 넘어 ‘민족 분열을
고착화하고 군사독재를 옹호한
수구 세력’이란 모함으로 덧씌워졌다.
심지어 6·25전쟁 영웅을 기리는
기념물이 테러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반면 국군과 미군에 의한
양민 살해 같은 기억은
침소봉대하며 이어간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6·25 전쟁의 참상을
다시 떠올리려 하겠는가.
러시아군이 저지른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과 납치 행위는
6·25 전쟁 당시 북한이 자행한
공무원·경찰·양민 학살과
납북 행위를 꼭 닮았다.
당시 피해자 후손들은 지금도
그 고통 속에 살고 있지만
혹여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언급하기를 꺼린다.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북한의 전쟁 만행을 언급하면
반(反)통일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모순에 빠진 이들이
한국 사회의 상층부에 있다.
그래서 더 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전쟁’이라고 여기며
관심을 거두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20여 년간의 노력으로 만든
잊힌 전쟁의 기억이 되살아날까
두려운 이들이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파리 정철환 특파원
Kheops - After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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